‘공감인’은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전하고 함께 소통하며, 치유 경험의 릴레이 구조를 만드는 치유활동가 집단이다. 장보임 사무국장은 시민 스스로 마음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며, 공감의 경험을 나누는 일을 기획하고 있다.
Q. '공감인'은 어떻게 합류했나?
A. 대학생 때부터 사회변화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일하면서 주변 동료, 선배들이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모습을 자주 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행동, 논쟁, 제안의 일을 반복하니 정서적으로 피폐해졌다. 소진된 상태로는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공익 활동가의 심리적 어려움을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하효열 님(현 사단법인 공감인 대표)을 만났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감인과 인연을 맺었다.
Q. '치유활동가 집단'은 무엇인가? 왜 '치유'와 '활동가'인가?
A. 치유는 치료와는 다른 섬세하고 개인적인 과정이다. 단순히 치료법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활동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치유 과정의 주체는 의료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며,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 ‘공감인’은 당사자가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소정의 교육을 이수 후 다른 시민을 치유하는 치유활동가로 이어진다. ‘치유 릴레이’ 구조다. 내 생활에서 치유를 구현하고, 또 다른 시민을 만나서 전파한다. 일종의 활동가 혹은 활동가 집단의 정체성에 가깝다. ‘치유활동가’는 마음의 길잡이다. 내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Q. 의료/심리 전문가의 치료/상담과는 어떻게 다른가?
A. 전문가가 일반인을 치료하는 권위적, 수직적 방법과 다르다. 당장의 치료와 해법보다는 정신적 어려움을 예방하는 쪽에 가깝다. 프로그램 참여자가 자신의 힘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내 마음을 타인과 잘 소통하고 교류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가 많은 얘기를 하며 마음을 표현하고, 존중적 공감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치유 과정을 설계한다. 첫째는 내 마음 털어놓기, 둘째는 공감받기. 이 경험이 핵심이다.
예컨대 저희 프로그램 중 ‘마음:온 - 나편’이 있다. 총 5주, 매주 1회, 회당 3시간으로 구성되며, 1조당 4명씩 약 5개 조로 운영한다. 매주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주제, 소재(음악, 시, 치유 키트)가 제공되고, 대화를 시작한다. 단, 대화의 규칙이 있다. 한 사람당 20분의 시간이 부여되고, 한 사람이 얘기할 때는 다른 사람이 대화를 자르거나 충고할 수 없다. 20분동안 나의 마음을 중단없이 이야기 하는 경험, 20분 동안 타인의 마음을 듣는 경험이 평생 얼마나 있을까?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새롭다. 내 말을 안전한 환경에서 오롯이 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상대방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Q. 치유의 과정에서 '치유 활동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공감인 사무국에서는 프로그램을 설계/준비하고 치유활동가를 섭외/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치유 활동가는 프로그램의 진행에 집중하여 참여자를 관리한다. 우선, 전체 진행을 돕는다. 조별 대화를 모니터하면서 대화가 겉돌지는 않는지, 한 사람의 주도로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살핀다.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 시 퍼실리테이터처럼 대화를 이끌기도 하고, 질문의 형태로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Q. 프로그램 내용 중 '치유 밥상'은 무엇인가?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
A.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가장 먼저 밥을 제공한다. 보이지 않지만 신경을 많이 쓴다. ‘나를 이렇게 한 사람의 존재로서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밥상을 준비한다. 참여자는 자발적으로 신청을 하지만, 방어적일 때도 있고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도 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힘들다고 얘기하기를 어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과하지 않나 싶은 정도로 환영/환대한다. 치유 밥상도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다. 어려웠던 마음, 서로 간의 담장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Q. 서울시, 카카오와 함께 기획한 '속마음 버스'는 인기가 높았다.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A. 서울 시민의 자살률을 어떻게 낮출 것이냐를 고민중, 시민 대상 예방/관리 차원에서 시작됐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나랑 가까운 사람과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를 사연으로 제출하고, 선정되면 여의도역에서 출발하여 강변북로, 자유로를 지나는 버스에 탑승하여 대화를 나눈다. 관계의 환기도 되고, 지인과 솔직하게 얘기할 기회도 된다. 대중의 호응이 높았다. 다만, 온라인 기반의 신청, 접수다 보니, 참여자 평균 연령이 낮았다. 연인 사이의 특별한 체험을 위한 사연도 많았다. 평일 저녁 운영하니, 해당 시간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사람은 참여할 수 없었다. 좀 더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더 다양한, 더 필요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청자, 탑승자 통계에 따르면, 가족 사이에는 평균 49.8개월, 부부 사이에는 13.49개월, 연인 사이에는 평균 5개월 동안 나누지 못한 속마음이 있다. 좀 더 대화가 필요한 가족 신청자를 많이 탑승시키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Q. '돌봄 종사자', '학교 밖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 '소방 공무원', '은둔형 외톨이', '성소수자' 등 특수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기억에 남거나, 편견이 깨진 경험이 있는가?
A. 학교 밖 청소년, 비자립 청년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5호 처분(소년법상 보호관찰관의 장기 보호관찰) 대상자였고, 그룹홈, 시설에 입소한 친구들이었다. 6주간 프로그램을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참여자들이 점점 더 또래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단답형으로 얘기하던 친구들이 점점 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아이와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아이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비자립 청년(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참여 청년 중 공감인에서 현재 치유 활동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이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다. 몇 년간 고립되었고, 사회 참여가 없었는데, 공감인의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서 조금씩 활동을 넓혀가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한다. 물론 모두에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람이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