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브랜드의 컬렉션을 들여다보고, 쇼핑 앱을 들락날락하며 사고 싶은 옷들을 장바구니에 담곤 했어요. '이 소재 이번 시즌 유행인가? 하나 사야할까?', '하늘 아래 같은 데님은 없지…'와 같은 생각은, 어렵지 않게 소비로 이어졌고요.
그러다 도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읽었고, 이후 오늘의 인터뷰이이자 책의 저자인 이소연 작가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 기후위기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의류 소비와 패션 산업의 기형적 구조에 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옷을 사지 않은지 벌써 5년차인 이소연 작가. 쇼핑중독이었던 그녀는 왜 쇼핑중단을 선언했을까요? 환경과 스타일, 모두 챙길 수 있는 멋부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오늘 입고 오신 옷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야기가 있는 옷이라면, 스토리도 함께 들려주세요.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자주 입는 세트예요. 가을이나 봄 같은 계절에는 늘 이 옷을 입고 오죠. 제가 <바람과 물>이라는 생태전환 매거진의 에디터로 활동할 때, 그 잡지의 발행인께서 선물로 주셨어요. 예전에 사두었지만 더 이상 입지 않으신다면서요.
나이가 많으신 분께 옷을 받은 건 처음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왔고, 인터뷰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자주 입게 됐어요. 바지도 중고로 구매해 수선했고요. 옷을 사지 않기로 한 이후로는 이렇게 선물 받거나 중고로 구한 옷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요.
| 옷을 사지 않기로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원래 쇼핑을 정말 좋아했어요.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날에도 쇼핑을 하고 있었죠. 미국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쇼핑의 피크를 찍었다’고 할 정도로 매일매일 옷을 샀어요.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쇼핑하던 중에 세일 중인 패딩을 하나 봤어요. 그런데 가격이 1.5달러인 거예요. '이 가격이 정말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평소 같았으면 완전 이득이라며 바로 샀을 텐데, 부피도 있고 여러 자재를 쓴 옷이라 그런지 느낌이 좀 이상했어요. 내가 만지고 있는 물건과 가격의 괴리가 너무 커다랗게 느껴졌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패스트패션을 검색했고, 패스트패션이 저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 환경 오염에 의존한 구조가 드러났죠. 이런 시스템에서 나온 옷이니 저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그때 이후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어요. 쇼핑을 즐기던 저에게는 매우 큰 변화였죠.
| 옷을 사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예쁘고 저렴한 옷들의 존재가 항상 어려움이자 유혹이었어요. 특히 한국에 돌아온 뒤 강남 지하상가나 익선동 같은 곳을 지나다 보면 옷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고요. 쇼핑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그래도 책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잘 설득한 것 같아요. 패션 산업의 실체를 깊이 파헤치기 전에는 옷을 정말 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쓰면서 ‘이 옷이 정말 필요한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과거에는 사고 싶은 것을 참는 일이 정말 힘겨웠지만, 이제는 옷을 사지 않음으로써 저만의 멋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가치 있다고 느껴요.
| 이전에는 뉴닉에서, 지금은 당근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글을 쓰고 계시죠. 글쓰기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환경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사피엔스>는 인류가 다른 종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남은 과정을 담고 있는데, 저는 이 지점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더 이상 착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이후 비건에 도전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도 했지만, 옷에 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패션 산업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이를 알리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쓰기는 제 일상과 습관을 바꿀 수 있게 도와준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예쁜 옷을 마주치면 ‘사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런 감정을 느낀 후 집에 돌아와 공적인 글쓰기를 했어요. 일기와 달리 공개적인 공간에서 나의 다짐을 선언하는, 독자가 있는 글쓰기였죠. 이 과정 자체가 옷 사지 않을 결심을 이어갈 용기를 주면서 책임감 또한 떠올리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를 통해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나는 10년째 옷을 사지 않고 있다"는 댓글도 있었는데요. 제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며 동기부여가 됐죠. 그래서 글쓰기는 저에게 단순한 기록을 넘어, 환경 문제를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였어요.
| 패스트패션은 환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저렴한 가격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지불해야 할 돈을 주지 않거나, 환경오염에 관한 비용을 회피하는 방식이 필수예요. 거대 패션 기업들은 10대 초반의 어린이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 오염에 관한 비용을 회피하고자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벌금이 낮은 국가에서 불법으로 폐수를 배출하고 있어요.
물론 싼 옷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해왔습니다. 많은 이가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저렴한 옷을 한 벌 사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저도 오랜 시간 그래 왔구요. 하지만 이와 같은 수요는 기업이 계속해서 저렴한 가격의 옷을 생산하도록 유도해요.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거죠.
최근 들어 자라(Zara)나 H&M 같은 대형 SPA 브랜드는 지속 가능한 섬유를 내세우며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동시에 쉬인(Shein)이나 테무(Temu), 알리(Aliexpress)와 같은 초저가 플랫폼들이 등장해 더 저렴한 옷들을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잖아요. 이런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재미 삼아 옷을 구매하는 소비 패턴 역시, 그 이면에는 여전히 임금 착취와 환경 오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입고 싶은 것’이라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탄생할까요?
패션 산업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산물이에요. 우리는 예쁘고 멋있어 보이기 위해 옷을 사지만, 사실 우리가 트렌디하다고 생각하는 디자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복제품의 반복인 경우가 많죠. 하이엔드 브랜드의 특정 원단이나 패턴에서 유행이 출발해 중저가 브랜드로 퍼지고, 마지막에는 초저가 브랜드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되며 대중화되는 구조예요.
이 과정에서 패턴이나 디테일은 원래 제품과 점점 더 멀어지지만, 소비자들은 이 저가 제품을 통해 쉽게 유행을 좇아요. 과거의 저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옷을 샀어요. 그런데 그 옷은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유행의 가장 끝단에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최근에는 SNS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유행이 더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더욱 빈번하게 소비하고요.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유행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요. 진정한 멋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