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은 인류의 절반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오는 중요한 생리 현상 중 하나입니다. 월경용품이 처음 등장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작 그 종류는 다양하지 않은데요. 월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리고, 부끄러워하며,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이죠.
듀이랩스의 임지원 대표는 생리컵, 생리디스크 등의 제품을 직접 연구, 개발, 판매하며 월경용품의 다양화를 제안합니다. 여성의 평균 월경 기간인 5일, 24시간 동안 함께하고자 하는 브랜드 '오이사(524)'를 운영 중이죠. 월경에 내재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여성의 삶을 증진하고자 하는 임지원 대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 월경을 혁신하고 삶을 디자인하기
2. 깐깐한 기획자이자 좋은 친구로
3. 다채롭고 주체적인 삶을 향해
| 발달장애 여성분들을 위한 생리대 개발을 시작으로 창업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세상에는 비장애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이 있어요. 가령, 시각장애인 중 전맹인 분들은 월경혈이 분비물인지 월경혈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촉감과 냄새를 통해 월경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경우도 있죠. 발달장애 여성분들 중 일부는 생리대 스티커를 뜯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으세요. 일반적인 생리대가 그분들께는 어려운 제품인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제품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제품이 사람한테 맞춰져야 하잖아요. 신체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마이너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맞는 월경용품을 개발하고 싶었죠. 그게 저희가 창업한 계기였고요.
| 월경용품이 아닌, 월경경험을 팔고 계신다고요.
여성들은 월경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일주일과 한 달이 달라져요. 그러다 보니 월경용품을 단순히 위생혈 처리 도구로만 볼 수는 없더라고요. 저는 월경용품 자체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황에 맞는 월경용품을 사용하는 건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과도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여성들이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월경용품을 적절히 선택해 가면서 최상의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모든 여성이 월경 기간을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기간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으면 해요.
| 월경컵 자체가 국내에서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제품인데요. 고객을 설득하고 제품을 인지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동아시아권은 삽입형 월경용품에 대한 두려움이 특히 강해요. 영미권의 경우, 나라마다 다르지만 탐폰 사용률이 평균 60% 이상이죠. 이에 반해 한국이나 일본은 여성기에 남성기 이외의 다른 것을 삽입하는 것에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여성에게 정조나 순결을 강요했던 유교 문화의 잔재라고 할 수 있어요. 삽입형 월경용품 사용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서, 생리컵이라는 제품을 인지시키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았어요.
그런데 이 제품이 얼마나 좋고,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생리대 이외의 월경용품에 대한 인지가 부재했던 터라, 관련 교육도 필요했죠. 독특한 방식으로 흥미를 끌어보고자 메타버스 상에서 ‘P의 축제, 월경 박람회’도 개최했어요. 월경을 넘어 우리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알아가자는 취지였어요.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느꼈던 불편함을 깨보자는 메시지를 던졌죠. 이런 시도들은 굉장히 고됐어요. 과정 자체가 재밌으면서 참 어렵기도 했어요.
| 7년 전 생리대 파동도 생리컵 사용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요.
생리대에서 발암물질과 화학 성분이 검출돼 문제가 됐죠. 많은 여성이 평소 생리대를 착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계기였어요. 피부가 약하거나 화학성분에 민감한 분들은 더욱 그랬을 거고요. 그 결과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고, 생리컵을 직구하는 사례도 늘었어요.
국내 생리컵의 역사는 아주 짧습니다. 사용률도 아주 낮고요. 전체 생리용품 중 탐폰의 사용률이 3.6%, 생리컵은 1.8%로 추산하고 있어요. 특히 생리컵은 광고를 통해 접했을 때 바로 구매로 이어지기에는 쉽지 않은 제품이죠. 제품을 경험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터득해야 하고, 걱정되는 부분도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올해를 기준으로 사용자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이 시장은 확장되는 방식이 좀 특이한데요. 생리컵을 먼저 사용해 본 사람이 주변 친구들의 멱살을 잡고 ‘제발 한 번 써보라’며 전파하는 식이죠. 생리하는 걸 깜빡 잊을 정도의 편안함을 효용으로 느끼고 있으니 직접 영업에 나서는 거예요. 막상 사용해 보면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에게 잘 맞는 생리컵을 찾을 경우에는 비 월경기간과 비슷한 수준의 일상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월경컵을 직접 사용해보고 주위로 전파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이 저희에겐 긍정적 요소에요. 생리대 이외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자연스레 주변에 확산하는 거죠. 이처럼 고객들이 지인을 직접 영업하고 생리컵 사용을 권하면서, 시장은 점점 더 확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