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학교는 2013년 설립해 12년째 위기·고립 청년들의 경제적·사회적 자립을 지원해왔다. 교육/상담/위기해소 지원을 결합한 방식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3~5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원하여 경제적/정서적 자립을 달성하도록 한다.
일하는학교가 만나는 청년들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진로/자립 장벽을 가진 청년들이다. 1)경제적 위기 2)교육기회 중단 3)지지관계 단절이다. 고립은둔청년,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을 비롯해 학교밖청(소)년, 가정밖청(소)년 등 다양한 범주의 자립위기를 겪는 청년들이 포함된다.
일하는학교는 위기 청년들의 자립이행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오랜 기간 이어지는 교육적 관계 형성, 그리고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성취경험이다.
이 글에서는 일하는학교의 프로그램/지원사례를 통해서 위기·고립청년 지원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점들에 대해서 다루어 볼 것이다.
사회가 청년 A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를 중퇴한 경험이 있는 ‘학교밖청(소)년’이기도 하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던 ‘고립은둔청년’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을 때 스무살 무렵이었던 A는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했다. 눈을 오래 마주치기 어려웠고 내가 한마디를 하면 대답을 듣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신청해 찾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이 좀처럼 되지 않았고 말없이 나오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좀처럼 자기표현을 하지 않아서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잘 알기 어려웠다.
B는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1인 가구 청년이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가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 시기가 많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청소년기의 일부를 청소년쉼터에서 보내기도 했고 이후에도 혼자 살아가는 시기가 많았다.
그는 가정의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청소년기부터 용돈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었다. 일찍부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계속 카페, 음식점 등에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에 진학해도 차근차근 진로를 찾아가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학이라는 교육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취업을 준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C는 장기미취업 청년이고 고졸비진학 청년이다. C는 특별히 위태로운 가정환경에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C의 부모님은 늘 아침 일찍 일을 나가 밤늦게 귀가했고, C의 마음상태를 살필만한 소양이나 여유가 없었다. C는 어느 순간부터 친구가 없어졌고 C의 마음은 학교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특별히 티가 나는 일은 없어서 마치 순탄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서 C는 사회로부터 단절되었다. 친구를 만날 곳도 고민을 상담할 곳도 찾을 수 없었다. 몇 년이 흐른 뒤부터는 점점 더 사람을 대하기 힘들어지고 가벼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두려워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A,B,C 청년들은 모두 청년·청소년 대상의 지원프로그램이나 직업훈련 또는 취업지원사업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을 통해 자립을 준비해가는 데에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원프로그램들’은 이 청년들의 특별하고 복합적인 특성과 위기환경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이고 실제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혹은 일정 정도까지 진행되던 중 지원기간이 만료되기도 했다.
학습이 단절된 경험, 관계 형성이나 의사소통의 어려움, 지속적인 빈곤과 위기환경에서 살아오며 불안과 우울감이 커진 청년들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고려할 점들은 뭘까?
➀ 제한을 두지 않는, 교육적 관계 맺기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참여 청년 A가 말하는 일하는학교 에서의 관계)
많은 청년지원 프로그램들이 ‘단편적인 서비스’의 형태로 지원된다. ‘서비스’는 단순화하자면 무형의 복지지원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에게 제공할 지원내용이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기간, 시간, 때로는 단가까지 규정된다. 심리상담 지원, 문화체험 프로그램, 취업컨설팅 등 하나하나의 단위 프로그램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온 청년들에게 단편적인 서비스 제공은 효과를 얻기 어렵다. 서비스와 서비스 사이를 메울 수 없고 서비스 이전과 이후를 살피기 어렵다.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중단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 청년을 지지하고 보호할 수 없다.
서비스는 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전제한다. 제공자는 사전에 규정된 범위에서 청년에게 서비스를 지원·제공하는 역할이고, 수혜자는 그것을 받는 역할이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관계를 맺는 것에 앞서, 무엇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받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 우선된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도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인간관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서비스 제공방식은 자발성과 적극성이 있거나 뚜렷한 조력자가 있는 계층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려는 위기·고립청년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찾고 활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위기 청년들의 위기극복과 자립이행을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다양한 상황들을 만날 때마다 각기 다른 접근법과 자원을 찾아 해결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때 정서적·인간적 지지가 필요하다. 청년이 여러 번 중단하고 시행착오를 겪다가 다시 시작할 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부모나 가족기반이 없는 청년들에게는 그것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
서비스 지원은 하나하나의 조각일 뿐이다. 청년이 회복하고 힘을 내고 꿈을 꾸고 나아가도록 하는 과정은 몇몇 서비스의 나열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전인적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 위기·고립청년을 온전히 지원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관계가 아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고, 더 나아가 ‘배움과 성장을 위한 교육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면, 교육적 관계 형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한마디로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서비스 관계와의 차이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기간과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의 회복, 성장, 자립을 위해서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의논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관계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만나는 시간과 의논하는 주제에 범위를 정해두겠지만, ‘긴급한 상황’이 되면 시간과 범위의 제약을 벗어나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단지 얼마나 오래 만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교육적 관계’라고 한 것은 이 관계가 문제들에 대응하고 솔루션과 자원을 제공하는 관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청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청년이 필요로 할때 지원해주는 관계와도 다르다. 때로는 청년에 앞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고 가르치기도 하고 지적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인생 선생님’의 역할이 ‘교육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육적 관계’에서는 청년의 자발성·주체성과 교육적 지도의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 균형을 잃으면 청년의 의사나 바람과 무관하게 일방적-지시적으로 이끌 수도 있고, 목표나 방향성 없이 삶의 모든 것을 챙기며 아이처럼 대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교육적 관계에서는 성장과 자립이라는 궁극적 방향을 놓치치지 않아야 한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자주 연락하는게 싫었고 귀찮아서 연락도 많이 씹고 그랬었어요.
그래도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저의 일자리 걱정과 밥 안챙겨 먹을까봐 센터로 나오게해서 같이 밥 먹으며 토닥여 주셨고, 취직 후에는 출근 하지 못할까봐 아침에 깨워도 주시고 당시 심각한 우울증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상담도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어느 순간부터 약(복용량)도 줄어들고 출근하면 선생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 출근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안좋은 생각이 들면 먼저 찾아가 상담 요청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어요.
(청년C가 말하는, 일하는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
➁ 개개인의 특성,상황에 맞는 성취경험 만들기
관계 형성 다음으로 고민할 것은 성취경험의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위기청년들은 의사결정, 위기극복, 역량개발 등 자립으로 이행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노력을 중단하고 멈춰 서곤 한다. 결정적 원인은 ‘성취경험’이 부족해서, 자신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립이행을 위한 기초체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지원프로그램 과정에서 각자 의미 있는 성취경험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취경험은 ‘주변화된 경험’과 대비된다. 뭘 하기는 했는데 뭘 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 경험, 자신의 특성, 상황에 맞지 않는 과제를 만나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기만 한 경험은 주변화된 경험이다. 자기 기준에서 과제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하고 결과의 효능을 느낄 수 있어야 성취경험이다. 하지만 세심하게 프로그램의 내용과 과정이 준비되지 않으면 다수의 청년은 주변화된 경험을 하다가 끝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제반환경과 조건, 참여자의 특성과 경험에 대한 세심한 파악과 배려, 그것을 참여자 개개인에게 반영하는 정도가 성취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위기·고립 청년 중에는 청소년기부터 학습이 사실상 중단된 청년들이 많다.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표현해본 경험이 없거나 낯설기도 하다. 충분한 역량이 있어도, 자신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어떻게 평가받을지 걱정해서 뒤로 물러나곤 한다. 보편적인 개념이나 용어를 모르기도 하고, 간단한 컴퓨터 작업을 못하기도 한다. 혹은 경계선 지능인이어서 간단한 작업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청년들이 프로그램 상황에서 자신이 해내기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손을 들어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난처함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까? 그러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슬쩍 넘어가면서 주변화된다.
이렇게 주변화된 경험들이 계속 반복되면 더 이상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의미 있게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프로그램 초기에 잠깐 생겨났던 의욕들이 다시 사라지고, 이유를 들어 갑작스럽게 프로그램 중단의사를 통보하기도 한다. 1시간이 지난 뒤에는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프로그램에 충분히 적응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충분히 살펴야 한다.
③ 어떻게 개개인이 성취경험을 할 수 있게 할까?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상황과 과제들을 각자의 눈높이에 맞도록 조정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특성, 경험해온 환경, 현재의 상태와 역량에 맞는 과제를 설정해야 의미 있는 성취경험이 일어난다.
자신의 수행역량보다 너무 높거나 낮은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가능하면 품이 들더라도 그룹을 나누어 별개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좋고, 현실적 한계가 있다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되 프로그램 안에서 그룹을 나누거나, 과제를 다양화해서 청년들이 각기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과제를 수행하게 해야한다. 사전 상담을 통해서 과제에 대해 미리 안내를 해주고 준비를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집단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어려워하거나 발표하기 어려워하는 청년이 있다면, 프로그램 시작 전에 오늘 다룰 주제를 설명해주고 미리 생각해보도록 할 수 있다. 아니면 강사와 협의해 각각의 청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나 설명방법을 의논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예시에 대해서 강사와 사전협의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사가 사용하는 용어가 참여자 입장에서 너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은 최소화하도록 하고, 발표하기 어려워하는 참여자와 부정적 사고가 많은 참여자를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협의해 두어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을 소개하는 것, 자신의 의견을 글로 쓰는 것, 짧은 발표를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발표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것, 자신의 발표가 프로그램 진행 중에 강사에 의해 언급되는 것 등 작은 과정 하나하나에서 성취를 경험한다.
함묵증이 있는 청년 D는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참여했지만, 자기 발언 차례가 되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진행자로부터 등을 돌려앉아 종이를 찟는 행동을 했다. 어렵게 소통한 결과, D는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고 당황스러워서 돌출행동을 한것이었다. 그날 프로그램의 주제가 D에게는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로 D에게는 프로그램 전에 주제를 설명해주었고, 말로 표현하지 않고 종이에 글로 써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D는 조금씩 말로 하는 표현을 늘려갔다.
(청년D, 개별화된 접근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