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주민을 노동력이나 이방인이 아닌 시민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요? 미디어에서 피해자나 범죄자로 묘사되는 모습이 아닌,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Table Talk는 <깻잎 투쟁기>의 저자인 우춘희 님과 방글라데시 출신 영화감독/활동가인 섹 알 마문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주민의 현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제도의 문제를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부산을 기반으로 이주민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다양한 주체와 연대하며 이주민 인권 활동을 펼치는 김사강 연구위원님을 만납니다.
| 이주민 인권 연구/활동의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유학 시절, 이주 정책과 이주민의 삶에 관한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한국의 이주민에 관심을 가졌다. 현장 연구를 위해 한국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 일하며 이주민을 만났고, 그들의 실상을 목격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 논문을 썼고,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인터뷰했던 이주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을 외면하고 학교나 일반 연구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글을 쓰고 연구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부산의 ‘이주와 인권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3개월짜리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벌써 12년째 일하고 있다.
| 어떤 업무를 하나?
매년 특정 주제로 이주민 실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 부처, 국회, 국제기구 등에 정책 개선과 법 제정을 건의하고, 필요하다면 시위나 농성 등 직접 행동도 한다. 사회가 쉽게 변하지는 않더라. 예를 들어 2012년부터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해 해양수산부에 정책 개선을 제안해왔지만, 지금까지도 바뀐 점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계속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다보니 정부 부처에서도 우리를 시민 사회의 파트너, 대화 상대로 여기고 필요시 의견을 구한다. 그러면 또 만나서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제안을 한다.
| 관심 연구 분야/주제는 무엇인가?
초기에는 미등록 이주민과 아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부산에서 어업 이주노동자, 농업 이주노동자를 접하며 그들에 대해 연구했다. 최근에는 더 취약한 이주민 집단인 장애 이주민에 대해서 조사/연구하고 정책 개선 활동을 한다. 초기 이주노동자 운동은 노동권에 집중했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노동조합 결성과 같은 이슈다. 이 영역은 우리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는 다른 단체가 있다. 우리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덜 다뤄진 건강권, 사회보장권 중심으로 연구/활동한다.
| 한국은 이주민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곳인가?
2006년 한국 정부는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로서 인종차별이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혼혈(Pure Blood), 순혈(Mixed Blood)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한국 사회의 뿌리박힌 ‘단일민족’ 의식과 이주민에 대한 배타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어느 중국 교포는 “마라탕, 탕후루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중국 동포는 싫어한다. 음식보다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제도적 차별도 여전하다. 과거에는 한국의 대만 국적 화교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다. 왜 그렇게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많을까? 직업 선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에서만 일해야 하고, 사업장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보험 가입은 가능하지만 기초생활보장, 한부모 가족지원 등 공공부조*는 받지 못한다. 이주민은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제도에서 제외된다. 지금의 제도는 사람보다 국민을 우선시한다.
* 공공부조: 생활 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 국가가 당사자에게 무상으로 보조, 구호를 담당하며 생활보호, 의료보호, 재해구호 등이 이에 속한다.
| 인도주의적 이주민 인권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하지만, 왜 다음 단계로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과거에는 이주민의 수도 적고 대부분 열악한 처지였기에 이주민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최근에는 이주민 수도 늘어나고, 일정 수준의 소득과 지위를 가진 이주민도 생겼다. 이주민의 월 평균임금이 250~300만 원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국민과 다를 바가 없는데 무슨 지원을 해주냐?’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불쌍한 처지라면 기부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기초생활수급권과 같은 권리까지 부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시혜적으로 베풀 수는 있어도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주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할 근거는 무엇일까? 외국인도 국민과 동일하게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 가사/돌봄 서비스까지 이주노동자 활용이 필요하며, 내국인과 다른 차등 임금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차등 임금 적용은 문제가 있다. 첫째, 내/외국인 차등 임금이 도입되면 해당 일자리가 이주노동자에게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편의점 아르바이트 채용 시 한국 대학생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외국 유학생에게는 면제된다고 가정하자. 편의점 주인은 외국 유학생을 뽑을 것이다. 내국인 구직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 가능성이 있다. 가사/돌봄 노동은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만 고용이 가능한 고된 직종이다. 그런데 월 100~150만 원의 임금으로 필리핀 여성 가사 노동자를 유입한다고 가정하자. 월 300만을 받고 공장에서 근무하는 비슷한 여건의 필리핀 여성과 당장 비교될 것이다. 가사 노동자로 지속 근무할 가능성이 작다.
셋째, 생활비 대비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는 해외 인력 유입 자체가 어렵다. 홍콩, 싱가포르에서는 가사 노동자가 고용주 집에서 거주하며 식사를 제공받는다.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별도로 월세, 교통비, 식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시원에 거주해도 월 40~50만 원 지출이 불가피하다. 최저임금 이하로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저임금 외국인력 활용 방안은 한시적으로만 가능할 뿐, 지속성과 현실성 모두 부족하다. 오히려 이주민에 대한 차별 인식만 부추긴다.
| 현 추세로 이주노동자의 수와 허용 업종이 확대되면, 내국인과의 일자리 갈등, 일상생활 갈등이 가시화되지 않을까?
정부는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만 이주노동자를 투입한다고 해왔지만, 지금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사람만 대체하려고 해서는 당연히 갈등이 생길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특정 일자리를 기피하는 이유는 임금이 낮거나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이주노동자를 데려다 놔봤자 그들 역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탈할 것이다. 이는 농업이나 어업 이주노동자들의 높은 사업장 이탈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당연히 노동시장 내에서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간의 일자리 경쟁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건설업 같은 곳에서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 고용을 반대하는 등 갈등이 가시화된 상태이다.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과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 한 갈등이 심화될 게 분명하다.
일상생활 갈등의 대표적 사례는 건강보험 문제다. 이주민은 건강보험 혜택에 무임 승차한다, 특혜를 준다고 오해한다.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가 부추긴 측면도 있다. 사실 다수의 농어업 이주노동자는 지역가입자로 상대적으로 비싼 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주민 지역가입자는 재산과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전체 가입자 평균보험료인 약 15만 원을 매월 납부한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도 예외없다. 또 세대원 등록 자격도 내국인보다 제한적이다. 부모 혹은 성인 자녀와 함께 사는 이주민은 각각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장애를 가진 이주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