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가족을 꿈꾸세요? 1인 가구 증가와 높은 비혼율 속에 많은 이들이 결혼이 아닌 새로운 관계와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죠. 이들은 개인을 억압하는 전통적 가족 규범에서 벗어나 동거, 주거 공동체, 각자 살지만 가까운 지인과 느슨한 상호의존 관계를 맺는 등 다양한 관계성을 시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권리와 지원에는 제한이 따르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김순남 공동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 가족구성권연구소 설립 배경이 궁금해요.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은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면서 2006년 활동가, 학자 외 여러 단체들이 함께 하는 연구모임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가족 내 남녀 불평등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일부 시민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이에 기존의 정형화된 가족 제도에서 배제되거나 자발적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요. 2015년 사회통계조사에서는 ‘결혼을 안해도 된다’는 응답이 50%를 넘었고, 1인 가구가 급증하는 등 급격한 변화가 드러났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상적인 가족상이 매우 공고했고 여기에서 벗어난 비혼, 한부모, 성소수자 등은 예외로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2010년대 중반 들어 평범한 시민들의 가치 체계가 변화하며 ‘정상적인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기 시작한거죠. 사람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관계 형성을 기존 제도가 담지 못하게 되면서 가족 제도의 변화 없이는 존엄한 시민의 삶이 어렵다는 문제 인식을 했고, 좀 더 빠른 대응을 위해 ’19년에 연구소로 전환,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하며 한국 사회의 친밀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연구했어요. 부모와 자녀, 남녀 관계 등 일상적 관계들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들여다보면 민주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잖아요. 관계 민주주의 관점에서 관계성을 살펴보고자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가족구성권연구소(당시 연구모임)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 가족구성권이란 무엇인가요?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가족구성권을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해요. 쉽게 말해 개인이 원하는 사람과 살아갈 권리죠. 언뜻 당연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국가가 법으로 규정한 ‘가족’은 이성 배우자와 혈족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면 제도적 지원에서 배제되거든요.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서도 차별이 존재해요. ‘권리’ 개념을 통해 가족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고, 제도 변화와 함께 정상, 비정상을 가르는 관념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이유에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애적 관계든 아니든 상관없이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를 상상하고 이를 제도화 하자는 거죠.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가 ‘가족’이냐, 아니냐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실질적으로 의지하는 ‘삶의 단위’, ‘돌봄 실천’의 관계성을 제도적으로 인정받을 때, 누구와 상호 의지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집필하신 책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언급하신 ‘가족중심 시민모델’과 ‘개인중심 시민모델’은 상호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을 가족질서 안으로 밀어 넣는 측면이 강해요.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4인 가족의 삶을 통해 이상적인 시민상을 제시하죠. 이런 가족중심 시민모델에서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특정한 가족 안의 사람만이 시민으로서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요. 그렇기에 가족으로부터의 이탈은 곧 권리의 박탈이자 생존의 위협을 의미하고, 가족 내 억압이 있다고 해도 개인은 다른 선택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거죠. 결과적으로 가족중심 사회는 사회가 상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관계성을 박탈해요.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믿어?’라거나, 동거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 동성 커플을 끊임없이 섹스로만 환원시키는 것, 장애인은 타인을 돌볼 수 없다는 편견 등이 그 예죠.
그런데 개인의 생존을 전적으로 가족에 맡겨 온 이 방식은 이미 위기를 맞았어요. 기존의 정상가족에서 돌봄과 유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 정형화된 가족 제도로부터 망명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친구나 동성 커플, 비혼 이성 커플과 같이 누군가와 함께 살든 혼자 살든, 개인이 선택한 다양한 관계 속에 상호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국가는 여전히 정해진 가족의 틀 안에 존재하는 사람만 지원 대상으로 상정하죠. 사회의 기본단위를 가족이 아닌 시민 개개인으로 상정하고 지원 체계 또한 가족 단위에서 개인 단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양하게 나타나는 관계성들을 사회가 인정하고 지원해 개인이 스스로의 존엄 속에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것, 결정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에서 개인중심 시민모델인거죠. 가족구성권은 이런 개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인 거구요.
|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생활동반자법, 내가 지정한 1인 등 제도적 변화를 촉구하고 계신데요, 간략히 소개 부탁드려요.
활동 초기에는 이성 간의 결혼만이 이 사회의 유일한 제도적 관계 모델이었기에, 이는 너무나 협소하고 경직된 제도라는 문제 인식에서 생활동반자법을 고민했어요. 동성 커플이나 비혼 커플 외 다양한 관계가 제외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혼’에는 시댁, 고부 갈등 등 당사자 외 다른 억압적 요소들이 따라붙고, ‘이혼’ 하면 전쟁이란 말이 먼저 떠오를 만큼 관계를 해소하기 너무 힘든 문제도 있죠. 이와 달리 생활동반자법은 친족 개념 없이 개인과 개인의 연대체로 관계를 등록하되 해소는 훨씬 더 유연한 방식이에요.
그런데 점차 생활동반자나 동성결혼처럼 법적 등록이 필요한 사람들 외에 다수의 혼자 사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 흔히 나타나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어요. 배우자 없이 혼자 살거나 자녀가 모두 외국에 있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경우 가까이 사는 친구나 지인과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법적으로 인정된 가족이 있다 해도 가장 가깝고 나를 잘 알고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가 꼭 국가가 인정하는 ‘그 가족’이 아닌 거죠. 영국의 경우 배우자가 아닌 내가 지정한 사람이 장례를 치를 권리에서도 1순위가 되는 일종의 연대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와 같은 변화가 필요해졌어요. 가족이나 생활동반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돌봄 관계에 있는 ‘내가 지정한 1인’에게 의료와 장례 결정권,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권리를 주는 식으로요. 이는 돌봄과 상호의존 체계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