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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2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아
비장애형제모임 '나는' 은아, 영아, 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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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가족 안에서 때로 소외감을 느낀 적 있으세요? 공부 잘하거나 특출난 재능 있는 형제자매한테 관심이 쏠리면 서운한 티라도 낼 수 있겠죠. 하지만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부모님이 바쁘시다면? '너는 알아서 잘할 수 있지?'라는 말을 들어도 혼자 고민하게 되잖아요.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셨나요?

이번 인터뷰는 이런 감정들을 더 깊고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분들, 바로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형제'들을 만나보았어요. '비장애형제모임'을 이끄는 은아, 영아, 신영 님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안에서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개인의 행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죠.

아울러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지,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이 이야기들이 우리 모두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어요?


정당한 소외 속에 자라는 ‘착한 아이’

| 세 분 소개 부탁드려요.

정영아 (35세)  다운증후군을 가진 연년생 남동생과 함께 자랐어요. 현재 ‘나는’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다른 비장애형제들을 돕고 있어요.

이은아 (36세)  한 살 차이 셋째 여동생이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있어요.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어떤지 궁금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다 모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김신영 (32세)  3살 아래 남동생이 자폐성 중증 장애인 이예요. 2018년 ‘나는’에서 출간한 책 북토크를 통해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 ‘비장애형제’는 누구인가요?

은아, 영아 | 비장애형제란 장애인의 형제자매 중 장애가 없는 사람을 말해요. ‘나는’에서는 주로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정신적 장애에는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 그리고 발달장애,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등이 포함돼요. 청년 시기에 공통적으로 가지는 고민이 있기에 처음에는 20~30대를 중심으로 모임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40대 이상도 참여하고 있죠.

장애의 종류에 따라 경험도 다양한데, 예를 들어 조현병은 청소년기 이후나 성인기 초반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발달장애는 처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죠. 저 같은 경우에는 1살 차이 발달장애 형제와 함께 자라며 그의 삶을 내내 지켜보며 돌봄에 참여해 왔어요. 부모님은 대개 자녀를 통해 장애를 처음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아요. 장애를 치료하고 교육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죠. 이렇게 장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안에서 비장애형제는 종종 뒤로 밀리는 경험을 하게 돼요.

‘나는’에서 공동 발간,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한울림스페셜)

| 발간한 책『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에서 ‘정당한 소외’, ‘착한 아이’, ‘죄책감’ 등 문구가 와닿았어요. 비장애형제들의 공통된 경험은 무엇인가요?

은아 | 저는 어릴 때부터 유기불안과 인정욕구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엄마가 동생을 돌보느라 바쁘셔서, 제가 조금이라도 말썽을 부리면 엄마가 떠나실까봐 늘 불안했죠. 아버지가 자식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오랜 기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셔서 엄마 혼자 고군분투 하셨거든요. 항상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다보니 20대 후반에  뒤늦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어요. '나는 장애인의 언니일 뿐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죠.

신영 | 저는 '2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부모님을 비롯하여 친척분들께서도 '너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그 말은 제게 큰 책임감을 안겨 주었어요. 그러나 열심히 노력했지만, 부모님께서 원하는 기대에 다다르지 못했을 땐 '네가 이렇게 밖에 못 한다면 대체 우리 집에서는 누가 해낼 수 있겠니?'라고 채근하셨죠. 장애를 가진 형제의 몫까지 감당해내야 한다는 기대와 부담감이 버거웠어요.

영아 | 저는 좀 다른 경험을 했어요. 부모님이 제게 미안해하시는 마음이 커서인지, 제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요구하신 적이 없어요. 항상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만 하셨거든요. 공부하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어요. 자유로워 보이겠지만 사실 부모님의 관심과 의견이 필요하기도 했는데 어리고 속상한 마음에  방임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삶의 대부분의 결정들을 혼자 알아보고 결정했어요. 이렇게 자라다 보니 모든 일을 알아서 대비하고 혼자서 결정하는 독립적인 성격이 됐어요.

은아 | 가족에게 느껴지는 죄책감도 문제예요. 성인이 되고 나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가족들의 기대와 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죠. 유학을 가거나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돼요. 심지어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는 것조차 '나만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나 직업 선택과 연애, 결혼에 대한 고민도 무게감을 더하죠. 장애 형제의 존재가 우리의 인생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쳐요.

‘나는’ 모임 홍보 속 비장애형제자매 체크 리스트 ⓒ나는

| “언니 같은 비장애형제 때문에 제가 엄마한테 욕을 먹는 거예요.”란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비슷한 경험 속에도 각자의 느낌과 대응은 다른가봐요.

은아 | 그 '언니 같은'의 언니가 바로 저예요. 신영님과 영아님은 모두 특수교육 전공인데, 저희 모임에도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전공인 분들이 과반 이상이에요. 장애 형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환경 속에서 자란데다 가족을 돕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영아 |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크겠지만 저는 제 일을 너무 좋아하고 적성에도 잘 맞아요. 동생한테 말을 가르쳐주는데 동생이 잘 따라왔던 순간의 희열을 지금도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동생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특수교육을 진로로 결정했어요. 스스로 선택한 진로이긴 하지만, 마흔 이 후엔 다른 일을 해볼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독립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2주에 한번씩은 꼬박 집에 내려가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좀 벅차단 느낌이 들더라구요.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서른이 넘어 사춘기가 찾아온 것 처럼 정신적 독립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자식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부담감, 또 그걸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맞춰 사는 게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져서 물어볼 사람을 찾았어요. 그래서 모임의 문을 두드렸는데, 각자의 상황도 비슷한 듯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양하더라구요.

은아 | 맞아요. 다들 저희처럼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임에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되려 장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완전 다른 전공과 진로를 선택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분들을 통해서 이런 선택도 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됐죠.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 애쓰는 삶이 가족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항상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언제나 그럴 수 만은 없잖아요. 결국 자신을 몰아붙여 소진하게 되는데 이건 건강하지 않지요. 다른 비장애형제들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 나누며 ‘나’를 찾는 방법, ‘나는’

자조모임을 만든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은아 | 처음에는 그냥 비장애형제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대학교 때 저를 종종 챙겨 주시던 발달장애 자녀를 두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지인 분의 자녀를 소개해주셨죠. 그렇게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장애에 대한 어떤 설명 없이도  바로 통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죠.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더 만나고 싶더라구요. 같이 모임을 시작해 4-6명 정도가 되었을 때, 전국에 퍼져 있을 비장애형제들을 더 모아보자고 합심해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여러 방법으로 홍보를 시작했어요. 그 때가 ‘16년이었는데 이후 모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자조모임 결성 후 ‘나는’은 SNS를 통해 비장애형제의 이야기를 알리고 함께 할 동료를 찾고 있다.  ⓒ나는

| ‘나는’ 이라는 모임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은아 | 모임 이름을 고민하던 중 한 친구가 외국의 비장애형제 관련 책을 언급했어요. 그 책 제목이 'What about me?'였는데, 우리말로 하면 '나는?'이 되죠. 비장애형제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워해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족 안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 수용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나에 대해 질문을 하는 모임이 되자는 의미에서 ‘나는?’, 나아가 'It's about me', 즉 '나는!'이라는 의미를 담아 '나는'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It's about me'를 같이 사용했는데, 모임 이름을 더 간결하게 하고자 지금은 '비장애형제모임 나는'을 정식 이름으로 쓰고 있어요.

|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은아 | 주요 프로그램으로 '대나무숲티타임'이라는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비장애형제들이 모여 어디에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예요. 상, 하반기로 나눠 월 1회씩 3개월간 진행하며 한 번에 15-20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주제는 연애, 결혼, 독립 등 비장애형제들의 관심사를 다루고, 경험 많은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어요.

심리검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인데, 전문적 지원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비장애형제 상담사가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필요시 상담으로 연결해드려요. 위기 상황에 처한 비장애형제들을 위한 긴급 상담 지원도 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DM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나는’의 자조 모임 ‘대나무숲 티타임’ 홍보 포스터와 모임 현장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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