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하면 따뜻함, 안락함을 떠올리곤 하죠. 실제로 한국인의 93.2%가 '집'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는 곳'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안정감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가정을 떠난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은 먼 꿈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 중 42.3%가 주거 불안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적절한 주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이번 호에서는 청소년 주거권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20년 가까이 청소년 지원 현장에서 일해 온 활동가들은 청소년들이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거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설이 아닌 진짜 '집'에서 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청소년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과 맡고 계신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하 “청주넷 온”)은 18개 회원 단체들로 구성된 네트워크 조직이에요. 각 단체들은 청소년 주거권과 관련해 우리 활동 목적에 동의하는 곳들이 연대해서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청소년 지원 현장, 법률 활동가 그룹, 청소년 인권 운동 단체, 그리고 청소년 당사자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죠.
저는 청주넷 온의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온의 활동은 온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청소년이 경험하고 있는 주거 현실과 주거권 보장의 요구를 알리기도 하고, 청소년 주거권 관련 법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도 하며, 다양한 조직들과 소통하면서 우리 운동을 함께 하자고 연대하기도 하고, 청소년 당사자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열고 우리의 요구를 정리하는 활동 등을 하고 있어요. 저 또한 그러한 활동들에 참여하기도 하고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적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청소년들의 특히 탈가정 청소년들의 위기 지원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현장에서 열심히 지원을 해도 청소년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사회 구조나 사회적 문제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특히 주거는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청소년은 연령 때문에 법적으로도 권한도 없고 주거정책에서도 배제되니 불안정한 상태가 나아질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사회 구조나 정책, 법이 변해야 우리의 삶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청소년 주거권 논의를 시작했어요. 청소년 주거권 운동으로 2019년부터 모임을 시작했고, 2023년에 정식 단체로 출범했습니다. 청소년 주거권 운동을 통해 청소년들도 차별받지 않고 집다운 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어요.
| '탈가정 청소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호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정에서의 위기 때문에 ‘쫓겨나기도’ 했지만 살기 위한 능동적인 ‘탈출’의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탈가정 청소년’으로 호명하고 있어요. 제도적으로는 '가정 밖 청소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이 현재 놓인 상태를 표현하는 듯 보이지만 이건 청소년은 가정에서 사는 것을 전제로 두고 현재 상태를 비정상적이거나 문제가 있는 존재로 보게 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가출 청소년’이라고 했지만 이것도 청소년을 향한 낙인이라 하여 바뀌기도 했죠.
청소년들이 살 수 없는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탈출하는 능동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탈가정'이라는 용어를 일부러 쓰고 있어요. 청소년의 주도적인 삶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죠. 주거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 탈가정 청소년들은 현실에서 어떤 주거 경험을 하고 있나요?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은 처음 집을 나와서는 시설에 들어가서 살기를 시도하지만 시설은 집으로 삼으며 계속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나오게 돼요. 그러면 처음에는 지인이나 친구 집에 머무르기도 하고, 갈 데가 없으면 패스트푸드점이나 PC방 같은 곳에서 지내요.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면 돈을 구해 고시원에 살거나, 집 구하기가 어려우니 누군가 "우리 집에 와서 살라"고 할 때 위험한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해요.
요즘에는 자신을 '헬퍼'라 부르며 청소년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와준다고 하면서 또 다른 착취나 범죄에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 청소년들은 성착취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 계속 놓이다가 시설과 거리를 오가며 10대를 보내고 20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20대부터는 주거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10대에 경험한 위험항 상황들, 그리고 계속 불안정한 생활을 살아왔기 때문에 20대가 돼도 안정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는 10대부터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왜 현재의 시설 시스템이 청소년들에게 '집'이 될 수 없다고 보시나요?
우선은 시설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공간이다 보니 많은 규칙이 있어요. 식사하는 시간, 취침시간,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 등 수많은 상황에 대한 규칙이 존재하죠. 한 쉼터에 가보니 수십 개의 규칙이 있던데, 이걸 지키지 못하면 문제가 되고 심각한 경우엔 거리로 쫓겨나기도 해요.
그리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요.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는 곳이니 다양한 욕구들이 충돌되기도 하고 개인의 상황이 다 다른 상황에서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죠. 예를 들어 쉼터에서는 귀가시간이 정해져있으니 일을 구하기도 어려워요. 집을 나왔기 때문에 보호자동의서를 받기 어려운 미성년자는 위험하거나 늦은 시간에 일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것도 현실인데 그럼 귀가 시간을 지킬 수 없으니 쉼터에서 지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청소년들도 많아요.
그리고 시설은 내가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과 사는 곳은 아니잖아요. 여러 사람과 한방을 써야 하니 내 시간과 공간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도 하니 이곳을 내 집, 내 공간으로 여기기 어렵죠. 더불어 쉼터에 입소하면 거소지정권 때문에 반드시 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해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집으로 당장 돌아가거나 부모를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청소년은 이런 쉼터를 이용하기 어려워 하기도 하지요.
이런 문제들은 시설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시설은 당장 긴급한 상황을 위해 필요한 곳이지 계속해서 살 수 있는 집이 될 수는 없어요.
| 최근 정상가족 규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죠. 이러한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이 청소년 주거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즉 자녀는 부모의 보호를 받아 살아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청소년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국가나 사회가 책임지기보다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접근해요.
한 국민으로서 어디서 태어났든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국가는 예산 문제 등을 고려해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정상가족 프레임 안에 자녀를 가두려고 해요. 시민들도 청소년에게 문제가 생기면 '저 부모가 잘못해서 그래'라고 생각하는 게 더 쉬운 거죠.
국가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부모와 살 수 없는 청소년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과 지원이 있다면, 지역사회 사람들도 그 청소년을 폭력이 여전한 원 가정으로 돌려보내거나 시설로만 보내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한 명의 청소년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안전감을 느끼거나 불안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 청소년을 위한 '보호'라는 건 어떤 의미로 생각하시나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있어요. 청소년 스스로가 '나는 보호받고 있다'라고 느끼기보다는 성인의 입장에서 관리감독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죠. 학교나 쉼터 같은 시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한 예를 들면, 가정법원 소년재판에서 다섯 명의 청소년이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네 명은 보호자가 있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한 명은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며 소년원에 보내졌어요. 이게 과연 청소년 입장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라고 느낄까요?
진정한 보호는 청소년의 욕구와 필요에 맞춰서, 당사자와 의논하고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어야 해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보호'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설 중심으로 청소년 지원 제도와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대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공공 지원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현행 시스템은 시설을 이용한 청소년, 즉 시설 중심으로 주거나 자립 지원이 되고 있어요. 아동양육시설(보육원), 청소년 쉼터, 그리고 성폭력이나 성매매 피해자 지원 시설 같은 시설들을 통해 지원이 연결되고 있는데요. 사실 어떤 시설이냐와 상관없이 청소년의 상황은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련 부처에 따라 지원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지원 조건이 청소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도 해서 꼭 필요한 이에게 지원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이런 시설 중심의 지원이 아닌 청소년이 놓인 상황에 따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이를 잘 보여주는 예인데요. 현재는 쉼터에서 2년 이상 살아야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실제로는 쉼터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기는 쉽지 않죠. 쉼터 퇴소 청소년 중 주거 지원을 받는 청소년은 1년에 30-40명 정도 된다고 해요. 1년에 탈가정 경험을 하는 청소년이 11만 명(여성가족부, 2024년), 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이 연 5.8천 명(국회 입법조사처, 2024년)인데 말이죠.
| 그렇다면 청소년 주거권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주거권 보장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주거와 그 집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다 포함된 개념이에요. 물리적인 주거 공간만 제공된다고 일상이 유지되는 건 아니잖아요. 청소년에게 맞춘 지원이 같이 제공되어야 해요. 지원은 개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의한 맞춤형이 되어야 해요. 청소년이 집에서 뭔가 고장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편하게 연락해서 물어볼 수 있고, 결정을 내릴 때 상의할 수 있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의료 지원이 필요하죠. 이건 청소년뿐 아니라 처음 혼자 살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잖아요.
또한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혼자 살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고, 더 나이 든 사람과 살고 싶다면 그런 구조도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집이 우선 제공되기도 하지만 지원이 꼭 같이 붙어있는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